아이를 키우다 보면 마음이 급해지는 순간이 참 많습니다.
안녕하세요!!오늘은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된 기다림의 의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았다에 대해서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밥을 먹는 것도 빨리 했으면 좋겠고, 옷을 입는 것도 알아서 척척 해냈으면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다른 아이들은 벌써 혼자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저에게는 이제 일곱 살이 된 아이가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제법 컸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아직 혼자 하기 어려워하는 일이 많습니다. 어릴 때는 그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니 성장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일정한 속도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날은 어제까지 못하던 일을 갑자기 해내기도 합니다. 반대로 며칠 동안 잘하던 일을 다시 어려워하기도 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부모인 제가 아이의 속도를 너무 빨리 정해놓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일곱 살 아이를 키우며 제가 가장 많이 배운 것 중 하나는 기다림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 역시 부모가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었습니다.
빨리 하라고 재촉할수록 아이보다 제가 더 지쳤습니다
아이와 아침을 준비하는 시간은 저에게 기다림을 배우게 한 대표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아침마다 마음이 바빴습니다.
아이는 일어나서 옷을 입고 양말을 찾고 가방을 챙기는 과정 하나하나에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는 옆에서 계속 시계를 확인했습니다.
“옷 입었어?”
“양말은?”
“가방 챙겼어?”
“빨리 준비해야지.”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는 분명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하는 속도보다 느렸을 뿐입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양말을 신는 것도 하나의 과정이었을 텐데 저는 결과만 보고 있었습니다.
양말을 신고 있으면 조금 기다려주면 될 일을, 저는 신발을 신을 시간까지 계산하면서 서둘렀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는 아이가 양말을 신다가 갑자기 멈춰 있었습니다.
저는 또 늦을까 봐 답답한 마음에 왜 가만히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한참 뒤에 양말이 뒤집혀서 제대로 신을 수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몇 분이면 해결되는 일이었지만 아이에게는 혼자 해결해보고 싶은 일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아침마다 조금씩 시간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아이가 준비하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아이에게 맡겨보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물론 매일 여유롭게 기다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시간이 부족한 날에는 제가 도와주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상황에서 아이를 재촉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순간까지 부모가 조금 물러나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곱 살이 된 지금은 예전보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꽤 많아졌습니다. 옷을 고르고 입는 일도 익숙해졌고 가방을 챙기는 모습도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자란 것처럼 느껴집니다.
돌이켜보면 아이가 자라는 동안 제가 해야 했던 일은 생각보다 단순했을지도 모릅니다.
대신 해주는 것보다 한 번 더 지켜보고, 알려주는 것보다 스스로 해볼 시간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부모에게는 몇 분의 기다림이지만 아이에게는 자신감을 만들어가는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아이와 비교하기 시작하면 아이의 속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비교하지 않으려고 해도 쉽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 비슷한 또래 아이들이 무엇을 잘하는지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저희 아이를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 아이도 저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다른 아이들은 벌써 하는데 우리 아이는 왜 아직 어려워할까?”
이런 생각이 들면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특히 일곱 살이 되면서부터는 학교에 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습니다.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혼자서 필요한 일을
잘 처리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됐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니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부족한 부분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글자를 조금 더 빨리 읽었으면 좋겠고, 숫자도 능숙하게 익혔으면 좋겠고, 자기 물건도 잘 챙겼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아이와 함께 책을 읽다가 문장을 읽는 속도가 느린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답답한 표정을 지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는 책을 읽다가 저를 쳐다봤습니다.
“엄마, 제가 잘못 읽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멈추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잘못했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아이는 제 표정만 보고도 그렇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아이가 무엇을 못하는지를 보기보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한 문장을 천천히 읽더라도 끝까지 읽었다면 그것을 인정해주려고 했습니다.
글자를 틀렸다면 바로 지적하기보다 다시 한번 살펴볼 수 있도록 기다렸습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아이가 책을 대하는 모습이 조금 편안해졌습니다.
물론 갑자기 실력이 크게 좋아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읽기 싫은 날도 있고 책보다 장난감을 더 좋아하는 날도 있습니다.
제가 기대하는 만큼 따라오지 못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아이에게는 아이만의 속도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어른이 생각하는 성장의 순서는 아이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는 일찍 잘하고 누군가는 조금 늦게 익힐 수 있습니다.
한 가지를 빨리 배운 아이가 다른 모든 부분에서도 빠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이를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순간, 제가 보고 있던 아이의 모습은 사라지고 다른 아이의 기준만 남았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아이를 바라보는 제 마음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저는 이제 아이가 얼마나 빨리 가고 있는지를 보기보다 어제와 비교해 어떤 작은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어제 혼자 못했던 일을 오늘 혼자 해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예전에는 너무 작아서 지나쳤던 변화들이 지금은 꽤 크게 보입니다.
혼자 신발끈을 만져보는 모습, 자신의 물건을 챙기려고 하는 모습,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를 물어보는 모습, 동생이나 친구에게
먼저 양보하는 모습.
이런 순간들이 모여 아이의 성장이 되는 것 같습니다.
기다려주는 법을 배우면서 저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아이를 기다리는 일이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쉽지 않습니다.
시간이 없을 때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고, 아이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답답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부모도 감정을 가진 사람이니 매 순간 완벽하게 기다려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달라진 부분은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화가 난 순간에도 한 번 멈춰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무언가를 시키기 전에 ‘정말 지금 제가 대신해야 하는 일인가’를 생각해봅니다.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조금 기다립니다.
처음에는 그 시간이 꽤 길게 느껴졌습니다. 아이가 신발을 신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도 답답했습니다.
제가 해주면 금방 끝날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혼자 해내는 모습을 보는 것이 재미있어졌습니다.
조금 서툴러도 끝까지 해내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괜히 뿌듯합니다.
아이도 제가 기다려주는 것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바로 저를 불렀는데 요즘은 먼저 해보고 나서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엄마, 이것만 도와줘.”
그 말을 들으면 저도 모르게 웃게 됩니다.
처음부터 전부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할 수 있는 부분까지 해보고 필요한 부분만 도움을 받는 모습이 조금씩
생긴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기다림이 만들어준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기다림은 아이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부모인 제가 더 많이 배워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는 자꾸 미래를 생각하게 됩니다.
학교에 가면 잘할 수 있을까.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공부는 잘 따라갈 수 있을까.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을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면서 지금의 아이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를 다시 바라봅니다.
아직 일곱 살입니다.
아직은 엄마에게 안기고 싶어 하는 나이이고, 재미있는 것을 보면 정신없이 웃는 나이입니다.
작은 일에도 속상해하고 금방 다시 웃기도 합니다.
저는 아이가 조금 더 천천히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어른의 기준으로 빨리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과 지금의 어린 모습을 오래 보고 싶은 마음이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보다 지금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잘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합니다.
아이의 성장은 부모가 정해놓은 일정표대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어제는 못했던 것을 오늘 해낼 수도 있고, 한동안 잘하던 일을 다시 어려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까지도 성장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집니다.
저도 아직 배우는 중입니다.
아이를 기다려주는 것이 무조건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필요한 순간에는 알려주고, 잘못된 행동에는 분명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다만 아이가 스스로 해볼 수 있는 순간까지 부모가 먼저 손을 내밀지 않는 것도 사랑의 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곱 살 아이를 키우면서 저는 기다림의 의미를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기다린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를 믿고 지켜보는 일이었습니다.
아이의 속도를 인정해주는 일이었습니다.
부모의 조급함을 조금 내려놓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기다림은 아이에게만 필요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저 역시 아이와 함께 기다리는 법을 배우면서 조금씩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빨리 잘하기를 바랐습니다.
지금은 조금 서툴더라도 스스로 해내는 과정을 더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아이가 앞으로 얼마나 빠르게 성장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일을 잘하게 될지도 아직은 모릅니다.
그저 지금처럼 자기 속도로 한 걸음씩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옆에서 너무 앞서가지 않고 지켜보려고 합니다.
아이의 손을 잡아줘야 할 때는 잡아주고, 혼자 걸어갈 수 있는 순간에는 한 발짝 뒤에서 기다려주는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된 기다림은 결국 아이를 위한 것이면서 저 자신을 위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아이에게도, 부모인 저에게도 꼭 필요한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